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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2

독서생활

by 캐뤼 2019. 3. 27.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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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황문수 역으로 읽었다.
어떤 땐 이 책이 낫고 어떤 땐 저 책이 낫고 그러네.. 두권이라 다행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원서가 있으면 좋을 듯.

책을 말로 전달해야하기에 읽어주고 복잡한 것은 내가 다시한번 씹어본다.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이 말은 이런 뜻인 것 같아요..라고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훈련이 된다.

"평등을 추구하는 경향에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해서 기만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차이를 제거하려는 경향의 일부다. 남녀평등은 바로 이러한 대가를 치르고 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자는 이제 다른 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남자와 평등한 것이다. '정신에는 성이 없다'는 계몽주의 철학의 명제는 일반적 관습이 되었다. 성의 양극성은 사라지고 동시에 이러한 양극성에 바탕을 둔 성애도 사라졌다. 남자와 여자는 대립적인 극으로서 평등한 것이 아니라 '동일하게' 되었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비개성화된 평등이라는 이상을 설교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대집단속에서 마찰없이 원활하게 일하도록 서로 동일한 원자적 인간이 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동일한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욕망에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량 생산이 상품의 규격화를 요구하는 것처럼 사회적 과정은 인간의 표준화를 요구하고 이러한 표준화를 '평등'이라고 한다."   - 32~33

"일치에 의한 합일은 냉정하고 관례에 따라 지시되며, 그 이유로 분리상태에서 생기는 불안을 진정시키기에는 불충분하다."

"오락도 상투적인 것이 된다.... 휴식 역시 일정하다. 일요일의 드라이브, TV, 카드놀이, 사교파티 등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활동은 일정하고 기성품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은 인간이고, 특별한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무와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 번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자임을 잊지 않을 것인가?"   - 34


프롬은 사랑을 실존 문제에 대한 신중한 해답으로서의 사랑을 말한다. 미숙한 형태의 사랑은 '공서적 합일'이라고 부른다. 주로 매저키즘과 다시즘을 들 수 있다. 서로의존하고 의존적인 상태이며 상대의 일부가 되거나, 상대를 흡수함으로써 분리로부터 도망가는 방법이다. 서로의 존재가 없어서는 안된다. 

대상에 대해 가학적, 피학적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내게 이런 면이 있는 것을 알기에 내 자신을 연애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거의 연애를 하지 않았다. 독립된 성숙한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많이 겪어서 내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나았을까 싶긴 하지만, 글쎄.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그런 경험이 독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롬이 표현하는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즉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단순히 물리적 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세계의 일체성을 경험하는 것, 내면적 자유와 독립의 상태를 유지한 상태의 영혼의 활동을 말한다. 

사랑은 수동적으로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준다는 것은 나의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내 잠재능력의 최고 표현이다. 물질적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역에서 '준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준다는 의미다. 즉, 자기 자신속에 살아있는 것을 준다. 기쁨, 관심, 이해, 지식, 유머, 슬픔 등 내안의 살아있는 것들. 이런 생명을 줌으로써 타인을 풍요하게 만들고 생동감을 고양시킨다. 주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그리고 참으로 줄 때 다른 생명에 야기된 것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은 사랑으로만, 신뢰는 신뢰로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려 한다면 당신은 예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당신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모든 관계는 자신의 의지의 대상에 대응하는, 당신의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생명의 분명한 표현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사랑을 일꺠우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면, 다시말해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만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 자'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한 사랑이고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주는 행위로서의 사랑은 자신의 인간적 힘에 대한 믿음, 곧 목표달성에 있어 자신의 힘에 의존하는 용기를 준다. 이러한 사랑을 한 적이 없다면 인간은 가지 자신을 주는 것, 곧 사랑을 두려워 한다. 


오늘 7번째 발성수업의 마지막 날이었다. 김영화, 유은정. 두분의 성장에 나는 깊게 감명받았고 내 부족함을 배웠고 또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불과 4번의 수업으로 성장하는 모습, 나로 인해 영향받고 달라지는 그 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감동이었다. 

사실 내가 뭘 가르쳤다기 보다는 그분들 스스로가 성장에 목말라 있는 상태였고 나는 운 좋게도 그분들의 입맛에 맞는 물의 역할을 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처음에는 내가 그 분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을까 의심했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이다'  - 45

수업일정을 짜고 그에 따라 진행하는 것은 매우 쉬운 방식이지만 나는 그 방법이 재미없고 힘들다. 나 혼자 진행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특히 내 수업은. 내 수업은 참여하는 데 의의가 있다. 참여하고 자신을 던져보고 스스로 성장의 포인트를 찾는 과정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내 역할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되면 나는 그것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그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때야말로 사랑의 힘을 펼쳐야 한다. 그들의 생명과 성장에 적극적인 관심을 줄 때다. 그리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아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프롬은 이 능력을 '존경'이라고 한다. 

그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경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그 사람의 내면에 파고들어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나는 이런 일을 아주 좋아하고 또 탁월한 능력이 있다. 항상 독선이 될까 두려움을 갖고는 있지만 나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 대해 그 저변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오늘도 그 힘을 느꼈다. 그리고 너무 감사했다. 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에.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발성수업이 서서히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동시에 나의 실험적 연애도 새로운 방향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그리고 내 손에는 15년을 돌아 다시 읽는 책 <사랑의 기술>이 들려 있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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