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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말이 나을까? 글이 나을까?

Carrie Feels

by 캐뤼 2019. 2. 1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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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해오던 팟캐스트를 접기로 결정했다.

3년 전 겨울이었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던 차에 내게로 온 팟캐스트를 덥썩 잡았었다.

처음에는 그저 무언가를 읽고 싶어 시작했다.

배우이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소리내어 읽는 것을 좋아했다.

동생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매학년이 끝난 무렵 새로운 교과서를 받으면 달력으로 곱게 포장하고 탐식하듯 읽었다. 

과목을 가리지 않았다. 읽을 수 있는 문자가 있는 것이라면 음악책도 읽었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는 교과과정보다 한발 앞서 나온 음악문제를 나 혼자 맞추는 일도 있었다. 물론 점수에 민감한 선생님들은 각 문제당 11점씩 부여해 99점을 100점으로 만들어주는 기적을 행하기로 합의하시었기에 맞추든 말든 점수에는 영향이 없었지만..

영어책도 마찬가지다. 단어를 몰라도 파닉스에서 배웠던 기억들을 쥐어짜며 혼자 막 읽었다. 그 습관 덕에 영어단어와는 소리는 익숙하나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묘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영어시험을 볼 때도 지문을 중얼중얼 읽어야 무슨 내용인지 이해했다. 그러지 않으면 바로 졸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팟캐스트와의 인연은 그 오랜 습관이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목적이나 모습은 상이하지만.

"뭐든 읽고 말하고 싶어" 

아마도 이건 인류의 보편적인 욕구가 아닐까. 관계맺고 무리지어 살기에 생겨난 욕구. 

사실 내 팟캐스트는 들려주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냥 세상 어딘가에 뭔가 남겨놓고 싶었다.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물고기 마냥 훗날 아무도 내 말을 못알아듣더라도 그런 신호가 어딘가에 남겨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쯤에서, 죽고 나면 모든 흔적이 없어지길 바라는 내 바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한 흔적은 사진과 책 같은 내 손에 잡히는 것들을 지칭한 것이었나..)  

솔직히 하루에도 수십개의 팟캐스트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상황에서 내가 하는 방송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한명 쯤은 듣고 반응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야트막한 기대는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당연하게도, 아주 쉽게 공중분해됐다. ㅎㅎ

그러고 나자 오히려 편해졌다. 읽어주는 시간보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혼자 하는 방송이 아니었다. 나 말고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 

온갖 개똥철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고 돌아다녔다. 독자를 생각한 방송이었다면 '서로 다른 정의'에 대한 배려를 시도했겠으나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 혹시라도 누가 들었다면 정신없었을 수도 있다. 

의식의 흐름을 입을 빌어 표현했으니 오죽 부족하랴. (막상 글을 써보니 글은 더 부족하네 ㅋ 엄청 호흡이 긴 글들이 이어지는데 이게 내 구어체랑 거의 비슷하다. 어미만 조금 다를 뿐. 아.. 부족한게 아니라 넘치는 건가? ㅋ)

어찌됐건 최근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는데.. 굳이 댓글을 단 걸 보니 내 말에 아픈 부분이 있었나보다. 누군가의 아픔을 내가 너무 쉽게 말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내 아픔을 내가 가볍게 표현한 건데, 청자를 고려하지 않았으니 굳이 그게 나라는 걸 말하지 않았고 상대방도 질문하지 않았고 그대로 넘어간 탓인 듯 하다. 처음엔 해명방송을 해야하나 싶기도 하다가, '편집하다 걸렸는데 댓글이 달렸네요'라고 말하며 단톡방에 캡쳐해 보낸 피디를 원망하기도 하다가, 이게 뭔 부질없는 짓인가 싶었다. 내가 그 해명을 한들 그 사람이 그런 댓글까지 남기고 내 방송을 또 들을 것도 아니고 굳이 내 과거였다며 내 상처를 들춰내서 설명하고 있는 꼬라지를 상상하니 구질구질하기도 하고. 

여기까지 이 긴글을 누가 읽을까 싶긴 하지만... 혹시라도 누가 읽었다면.. 그래서 팟캐를 그만 두는 건가? 하고 생각하겠지만..
노노~ 

단톡방을 보고 방송을 들어보니 방송 꼬라지가 가관이었다. 분명 방송은 세 명이 하고 있는데 나혼자 주절주절 거리고 있는 게 역겨웠달까. 

타고난 수가 5라 말에 힘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이건 좀 재수없었다.

내가 내 자신을 재수없어 하면서 그 방송을 어떻게 또 녹음하고 앉아있나? 또 그 꼴일텐데..

그래서 접기로 했다.

굳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녹음실 가서 그런 짓을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

저혈압에 올뺴미라 아침은 조용히 자는 게 좋다.

꿀늦잠을 포기하면서까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듣는 사람도 고역일테고.

여튼.

적당한 자기비판과 오지랖을 동원해 방송은 그만두기로 했는데

근성은 변하지 않는지라 ㅋㅋ

여기다 쓰고 있다.

차라리 혼자 하는 편이 나은 듯. 나 혼자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아~ 추임새 넣어가며 듣고 있는 건.. 무슨 사이비종교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런 상태가 매회 지속되면서 나다움이 사라졌다. 

어린애같이 가볍게 던지는 사람인데.. 근엄 떨고 있었으니 지나가듯 툭 날린 말이 얼마나 날티났을까.

자아비판은 여기까지.


쓰고보니 제목이랑 한참 떨어져있는 것 같네. 언제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간 건가.. 

의식이 흐르는 대로 두면 어쩔 수 없나보다. 이래서 난 글쓰기에 적합하지 않은가봐 엉ㅠ엉ㅠ 

그래도 또 쓰겠지? 매번 일기장을 펼치듯이? 


#인스타가편해 #해시태그완전좋아하게됨 #여기다이런거해도되나? #안되면말지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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