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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별이 된 아이, 길이 -1-

Carrie Feels

by 캐뤼 2019. 2. 2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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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하루동안 길이를 만나고 떠나보냈다.

길에서 주운 아이 길이. 강북구청 뒤쪽 놀이터 앞 길가에 버려져있던 아이.
버려졌다 단정짓는 것은 그 아이는 자기몸조착 가눌 기력이 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날은 가게에 가서 노가리 택배를 부치고 물건을 살 일이 있어 평소와는 다른 길로 퇴근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만날 운명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굳이 그날 살 필요는 없었지만 굳이 사러 가고 평소와 다른 길로 갔던 것은.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람들이 보고 있어 무언가 싶어 가까이 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작은 고양이. 팔다리가 굽은 듯 웅크리고 가만히 있는 검은 생명.앙상한 몸에 오물이 덕지덕지 붙은 가죽에 오물딱지로 뒤덮인 얼굴과 입. 입속은 악취가 가득했고 알 수 없는 천 먼지가 가득했다. 

주변에 여자 둘과 아저씨 하나가 쳐다보고 있었다. 멀찍이 서서. 
아마도 선뜻 가까이 다가가 만질 몰골이 아니기에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가만히 서서 길이를 계속 쳐다보자 아저씨가 물만 먹으면 산다고 중얼거린다. '그렇게 잘 알면 니가 데려가라! 주절대지 말고' 죽방을 날리고 싶었다. 화가 치밀었다.

전단지 종이 위에 가느다랗게 떠는 앙상한 길이가 있고 그 앞에는 누군가 놓아준 소세지가 있었다. 아이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힘겹게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본다. 아니, 그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뿐. 더이상의 반응도 없이 그저 그렇게 앙상하게 있었다. 희미하제 몸이 떨렸다. 마른 나무가지 같은 몸이 금방 바람에 흩날려버릴 것처럼 떨렸다. 

뒤를 돌아 서윤이를 봤다. 서윤이는 멀찍이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것을 서윤이에게 줬다.

"집에 데려가자"

그렇게 그 아이를 안아들었다. 잘 휘어지는 나무가지를 하나 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없이 가벼웠다. 시큰한 악취가 코를 찔렀지만 추울까봐 꼭 안았다. 잠바속에 넣고 왔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꼭 안고 왔던 것 같다. 두손에. 길이는 나를 확인하듯 보고 운명에 맡기겠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작은 소리를 냈다.

"응, 길아. 내가 살려줄게"

우리는 밑도 끝도 없는 약속을 했다.

집에 오자마자 길이를 화장실에 놓고 옷을 벗었다. 같이 살고 있던 고양이들이 낯선 냄새에 긴장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길이를 확인하고는 도망갔다. 아무래도 죽음에 가까운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한 거겠지. 

따뜻한 물을 받아 길이를 담갔다. 우리집 고양이들은 물을 싫어해서 길이도 발버둥칠 줄 알았는데 별 반응이 없었다. 코에 물을 박고 있는데도. 죽었나? 일부러 코를 건드려 본다. 반응을 보인다.살아있다.

도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미끌거리는 가래같은 것들이 오물과 함께 풀어져나갔다. 천먼지가 많이 나왔다. 아마도 다쳐서 근처 미싱집 같은 데에 숨어 물도 못먹고 그저 죽는 날만 기다리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것을 누군가 발견하고 내다버린 것 같았다. 혼자서 설 힘조차 아니 목을 가누지도 못하고 물에 코를 받은 채 있는 아이다. 이런 아이가 살겠다고 스스로 그 추운 날 나올리가 없다.  

몇번이고 물을 바꿔가며 몸을 닦았다. 따뜻한 물에 서서히 오물이 닦여나가고 얼굴도 물을 묻혀 불려서 살살 씻었더니 어느 정도 닦아졌다. 아이는 물 속에서 가만히 있었다. 물에 코를 박아서 숨쉬기 힘들텐데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목을 가누지 못해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겠지.

씻고나자 한쪽 다리에 깊이 패인 오래된 상처가 보였다. 허연 뼈가 드러나 보였다. 제법 아플텐데도 별 반응없이 가만히 물속에 있는다. 이제 생각

해보면 체온이 너무 떨어져서 그저 따뜻한 물속이 포근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조금 뜨끈하다 싶은 물에 들어가자 살아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힘도 없는 것이 나가겠다고 버둥거렸다. 뜨거운 물은 미안했지만 그렇게 반응해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고마웠다. 너도 살고 싶구나! 살아 있구나! 생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있구나! 다행이다^^

꼬리가 엄청 길었다. 얼굴은 작았고. 몸은... 뼈였다. 척추뼈가 그대로 뾰족하게 솟아있었다. 조심스레 수건에 감싸들고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만났고 길게 살라고 '길'이라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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