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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09 치유하는 중인가요?

Carrie Feels

by 캐뤼 2019. 3. 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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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낸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요즘은 잘 하지 않지만, 상처라는 것이 떠올라서 내 몸을 감싸고 심장을 쥐어짜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이전에는 그것이 매우 당연한 일이고 나는 그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할수록 나는 가라앉고 내 삶은 피폐해져만 갔다. 이유는 몰랐다. 다만 내 생각보다 상처가 너무 컸었구나.. 라고 짐작하고 더 열심히 보듬어 안기위해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울고 또 울었다. 세상 무엇도 나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나 자신만이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너무나 초라하고 작았던 나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보듬어 줄 힘이 없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그럴 돈도 시간도 없었다. 
어설프게 심리학을 공부했을 때의 모습이다.


그러던 어느날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자살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균열이 생길 것도 아니니 이런 미미한 존재인 나는 그냥 지금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옥상은 다행스럽게도 뛰어내리기 힘든 구조였고 나는 어떻게 뛰어내리면 좋을까를 고민하며 지상을 내려다 봤다. 아찔했다. 뛰어 내리는 동안 무슨 생각이 들지도 무서웠고, 그 무중력감도 무서웠고, 죽는 순간의 아픔과 혹은 죽지 않았을 경우의 끔직한 삶이 무서웠다.
모든 감정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지나가자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려왔다.

"죽지도 못하는 년이 꼴깞은..ㅋ"

내가 발견한 건 살고 싶어하는 본능 하나였다. 다만 그 살아있음이 즐겁지 않아 죽겠다고 혼자 쇼를 한 것이었다. 죽지도 못할 거면서.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보듬고 어루만져줘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까지 방치한 내 자신을 굳이 끄집어 내서 토닥토닥 해줘야 지금의 내가 행복해진다고 생각했었다.

웃긴 일이다.

나는 그 아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꺼내서 보듬어준다는 거지? 꺼내서 보듬으면 보듬을 수록 그 기억이 뚜렷해지는데 그 짐은 누가 다 지고? 그리고 그게 과연 내 과거의 기억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 날조한 기억일까? 기억의 어디까지를 신뢰해야하지? 또한 그런 짓을 한다고 한들 현실 속 내 삶이 달라지나? 그 아이와 나는 이미 함께 하지 못한 세월만큼이나 동떨어져 있는데?

물론 한 가지 자각은 됐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 내면아이인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알았다. 무의식적으로 내면아이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내면아이가 시키는대로 감정을 일으키고 움직이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 의심없이 그게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바꿀 수 없다며.
그런데 그 내면아이가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고 해서 내면아이가 그렇게 된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합당한 이유를 갖다 붙일 뿐이다. 그 아이와 나 사이에는 이미 겹겹의 기억들이 가로막고 있기에 서로를 잘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다고 믿을 뿐이다.

인간이 바꿀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걸 증명하는 건 내 관심사도 아니고. 다만 인간의 생각은 얼마든 바꿀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 그 인간은, 최소한 외견적으로는, 바뀌어 있다.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된다.

그럼 다시 내면아이로 돌아가서,

왜 나는 지금 삶이 힘든 것을 과거로 돌아가서 이유를 찾을까? 과거의 상처를 찾아 보듬으면 지금이 덜 힘들어지나? 행복해지나? 없던 일이 되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나?

오히려 지금 내가 힘든 이유가 더 강화되지 않을까? 내면아이도 힘들고 힘든 과거로 인해 지금 내 삶도 이렇게 힘들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과연 내 삶에 행복한 적은 있었나? 이런 인생 살아 뭣하나' 라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지금 내 삶이 힘든 이유는 지금 내가 힘들기로 선택하고 그에 합당한 이유를 찾기 때문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언젠가 깨달으면 덜 힘들게 살테고 아니면 계속 그렇게 살면 되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그 이유를 계속 찾아 지금 힘든 걸 강화하고 자기연민의 나락에 빠져들고 있다는 건 명백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 현실이 좋다면 계속 그 생각을 고수하면 된다. 싫다면 빠져나오면 되고. 

생각끊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머리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생각들을 향해 한마디 외치면 된다.

"닥쳐!"

지금의 내가 힘든 것은 당면한 현실이며 이에 대한 타계책을 찾기위한 '과거탐사'가 아니라면 과거를 살피는 것은 필요없다. 과거를 떠올려봐야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좋지 않은 것들만 찾아낼테니. 

지금 해야할 일은 이 불쾌하고 불필요한 감정을 떨쳐내고 뒤돌아서는 것 뿐이다. 

누군가와 헤어져서 힘들다면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삶을 바라보고 슬픔에 빠질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내 모습을 그려야 한다. 같이 먹던 밥을 혼자 먹고, 데이트하던 장소를 혼자 거닐고. 기억에서 그 사람이 점점이 흩어져 바람에 날려 사라지게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일이다.

기억에서 지우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그럼 평생 데리고 살면 되고.
점점이 흩어진다고 해서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데이터를 지운다고 복구되지 않는 것이 아니듯. 다만 램에 저장해놓고 바로바로 띄우는 게 아니라 하드디스크에 복원해야 겨우 볼 수 있는 흔적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생겨난 문제로 상처입었다면? 대부분 과거의 행위 하나하나 되새김질하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안 그랬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시간을 돌리고 싶어하는 욕망은 전혀 새로운 욕망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래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바라보는 무력함?

차라리 '앞으로 이런 상황이 온다면 그 땐 이렇게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그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라. 머리속에서 부단히 연습하지 않으면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같은 행동을 하고 똑같은 후회를 하게 된다. 연속된 헛발질로 구제불능인 나 자신을 끌어안고 머리만 쥐어뜯게 된다.


과거와 같은 삶을 또 살 것인가?

'사람들한테 상처받아서 너무 힘들어. 왜 나한테 이런 상처를 주지?' 라며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삶을 계속 살 것인가?


치유는 없다. 오직 선택과 집중이 있을 뿐이다.

살아있기를 선택할 것인가 죽어있기를 선택할 것인가.

지금 내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쥐어줄 것인가.

가슴을 쥐어 뜯는 마음? 아니면 느긋하고 평온한 마음? 

다가올 미래로 설레는 마음? 아니면 불안한 마음?


선택은 결국 내 몫이다.

기준은 오로지 '지금 내가 행복해지는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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