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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11 오면 받고 떠나면 찾아나선다.(빡독 스피치 준비용)

Carrie Feels

by 캐뤼 2019. 3.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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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나는 우리 아버지 말씀대로 하면 '잔재주가 많아 입에 풀칠을 못한다'

내 식대로 표현하면 "몸쓰고 돈 버는 재주만 없다".

 

무대공포증이 심해 남들 앞에서 말하거나 노래 부르면 입술과 볼이 씰룩거린다. 그런 나는 연극, 그것도 즉흥극 배우다. 목소리 코칭을 하고, 사회인밴드 보컬을 하고, 팟빵에서 제법 상위권인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노가리를 팔고 있다.

 

돈이 없으니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작용했다.

 

"오면 받고 떠나면 찾아나선다."

 

내게 오는 상황을, 능력껏 받아들이고, 환경이 날 밀어내면 다른 것을 찾는다.

 

 

2. 남을 의식한 선택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은 사법시험 준비였다. 허영심 가득한 꿈이었다. 송파구를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먹고 살 수 있었던 과외를 팽개치고 명예를 얻어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선택의 순간은 짧았고 그 대가는 길었다. 무려 7년을 떨어졌다. 나중엔 정신력과 체력이 바닥나 조금만 걸어도 숨이 쉬어지지 않고 목소리도 잘 안나왔다. 죽은 듯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자살하러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그 곳에서 나는 살고 싶은 욕망만 가득한 나를 만났다.

 

그때부터 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폭망한 인생이니 마음 편하게 살자. 나를 위해 선택하고 살자.

 

 

 

3. 환경이 오는 대로

 

거듭된 실패로 간이 작아져 작은 일탈을 하는 것으로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간단했다. 재밌어 보이면 한다. 내게 오는 것은 일단 받는다. 목공을 배워 대패질, 톱질을 하고, 가죽공예를 배워 수업도 하고, 성악을 배우며 잃었던 목소리도 찾아갔다. 예쁜 고양이를 만나 훗날 이 아이가 죽어 묻어주는 그림이 그려지자 입양도 했다. 그렇게 촉을 앞세워 선택했다.

 

그러다 연극을 만났다. 2때 연극부 오디션에 떨어진 적이 있어 막연한 로망이 있었는데 마침 일반인을 대상 수업을 발견했다. 선생님은 배우 명계남이었다. 연극 만든다고 지지고 볶다 4개월이 지나자 명쌤이 완자무늬에 가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극단 완자무늬에서 첫 연극을 했다.

 

누군가 날 관찰하고 몸짓이나 말을 지적해주는 것은 생경한 느낌이었다. 누가 날 관심있게 봐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다. 내 첫무대는 공연 전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캄캄한 가운데 하이라이트가 나를 비추면 멘트를 하고 공연시작을 알리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갑자기 맡게 된 거라 엄청 연습하고 엄청 떨며 무대에 올라갔는데 조명이 켜지는 순간 무대는 너무도 포근하고 따뜻한 요람같았다. ‘무대가 내게 왔다.’ 나는 과외를 끊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책과 노트, 법전을 내버렸다.

 

연이 닿아 다른 극단에서도 작업했다. 배우 뿐만 아니라 매표, 구매, 회계, 단원들 식사까지 맡게 되었다. 하나씩하나씩 늘어나길래 주어지는대로 할수있는만큼 했다. 그리고 '너는 조직생활을 모른다', '취미로 연극하지 마라 주변 피해준다', '앞으로 니가 어디서 뭘 하든 앞길 막아주겠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마지막 말은 고마웠다. 그런 광팬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4. 환경을 찾아서

 

(1) 거부당했으니 찾아나설 때였다. 연극바닥을 모르는 내게 다른 길이 쉽게 보일 리가 없는데 바로 연극지도사 양성 수업을 발견했다. 큰 기대없이 들었는데 의외로 신체훈련을 많이 하고 실습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교육법을 익혔다. 지도하신 선생님의 소개로 씨어터스포츠라는 즉흥공연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지금 속해있는 한국즉흥극장까지 왔고 지금은 대한민국에 몇 안되는 Improv전문 배우를 하고 있다.

 

(2) 움직임에 대한 갈증에 목말랐을 때 춘천마임아카데미 워크샵을 발견했다. 바로등록. 매일 아침저녁 춘천으로 출퇴근 하며 보이스테라피, 광대짓, 인도의 어떤 움직임, 봉산탈춤, 고성오광대놀이 등을 배웠다. 거기에서 연결되어 가족뮤지컬을 하게 됐다. 선배들이 아동극을 우습게보고 이상한 말버릇 생기니 절대 하지 말라는 소릴 많이 했는데, 아동극이 내게로 오길래 그냥 했다. 인형술사가 되어 매일 하루 세번 공연을 1년간 한 결과 무대는 내 생활 됐고, 매일 노래한 덕에 성대가 상해 스테로이드를 맞을 정도였는데 회복하고 나니 소리가 더 잘 나왔다. 그리고 발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말버릇은 생길 수가 없었다.

 

(3) 다른 공연을 하면서 극단 완자무늬에서도 계속 공연을 했는데 완자무늬의 연출선생님은 자기소리 내는 것만 고민해오신 분이었다. 내가 더빙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못하는 이유를 이때 알았다. 자기 소리로 하지 않은 말은 힘이 없는 껍데기라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었다. 말하기에 대한 고민을 풀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찾아다녔다. 판소리, 민요, 노래 관련한 수업을 듣고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 프랑스 등에서 온 선생님을 통해 발성을 배웠다. 특히 프랑스는 로이하트라는 곳에서 무려 75살 선생님 두분이 오셔서 가르쳐주셨는데, 이것이 대박이었다. 소리를 내는 맥락이 모두 같았다. 노래하든 말하든, 고음이든 저음이든. 그동안은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연습하면서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체득하게 되었다. 내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가 주는 울림을.

 

이걸 깨닫고 완자무늬의 공연연습을 하는데, 말하는 동안 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경험을 했다. 1~2분의 말하기였는데 온몸에 땀구멍이 열려 땀이 후끈 났다.

 

'이거다! 내 말을 한다는 건 이거다!'

 

그리고 그 공연이 끝나고 연출쌤이 한마디 하셨다.

 

'오늘 잘 했지. 이제 겨우 나이값 했지.'

 

 

 

5. 환경이 오는 대로

 

(1) 연극으로 먹고 살기가 막막한 내게 노가리 팔라는 말이 들어왔다. 아버지가 속초에서 노가리공장을 하신다. 아버지도 노가리 팔라 하시고, 주변 사람들도 이 맛있는 걸 팔아야지 뭐하고 있냐고 했다. 장사속이 없어 지인들이 달라하면 주기만 했었는데, 거기에 내 이익을 붙이라니. 어색하고 용납이 되지 않았다. 시도해보고 안되면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냥 한번 질러봤는데 덜커덕 하게됐고, 현재는 노가리를 잘 파는 방법을 공부 중이다.

 

(2) 그래서 마케팅을 공부하기 위해 한 단체에 들어갔다. 근데 쌩뚱맞게도 나한테 발성수업을 해달라고 했다. '뭐지? 노래하는 발성 같은 거 모르는데' 알고보니 프리젠테이션이나 세미나 등을 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이었다. 기회가 내게 왔으니 그냥 콜. 나는 연극배우니까 스피치 스킬은 잘 모르니, 남 앞에 설 때 몸과 마음을 잡아 자존감을 키워주는 코칭을 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열성적으로 수업을 들어주셔서 지금까지 7개월간 무사히 잘 꾸려오고 있고, 이제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강연을 준비하고 있다.

 

(3) 연이 닿아 했던 즉흥극, 정확히는 Improv. 관객참여형 공연이라는 것도 재밌지만, 직접 해보면 자기계발 측면에서 너무 좋은 활동이다.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순발력, 창의력, 상대방 관찰, 경청, 자기표현 등 모든 것을 한번에 익힐 수가 있다. 그동안 크고 작은 기업체(마이크로소프트, 포르셰, 동아출판 등)에서 임직원을 상대로 했는데 너무 놀라웠다. 직급이 높을수록 더 적극적이고 창의적이다.

 

(4) 몇해전 연극인밴드에 지원했다가 모욕적인 이유로 떨어졌다. 오디션 시간에 50분 먼저 가서 유일하게 시간 맞춰 오디션을 봤던 나를 떨어뜨리는 이유가 성실함 부족’. 그런 소릴하는 집단 따위는 내쪽에서 거절이다. 기타와 장구반주에 맞춰 노래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지원했는데 mr에 맞춰 볼륨조정도 안한 마이크에 대고 노래하고 떨어졌다. 2년 후. 지금은 딱 두곡을 원노트 베이스로 가까스로 연주하는 보컬이 됐다.

 

 

6. 다시 찾아다니는

 

노가리도 잘 팔고 싶고, 사업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싶고, 임프라브 공연도 하고 자기계발 수업도 하고 싶고, 발성수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고, 연극을 이용해 동기부여를 해주는 사업도 하고 싶고, 최근 배우기 시작한 카포에라도 잘 하고 싶고, 캉구점프 강사도 되고 싶고, 길고양이동산을 만들어 길에서 핍박받는 동물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리고 내 공연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대본을 완성하기 위해 빡독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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